
베체트 병이라고 하니까, 다른 병들처럼 우리 신체의 장기 이름을 따서 지어지는 질병 이름이 아니라서 좀 생소하게 느껴지실 것 같습니다. 베체트는 터어키의 피부과 의사의 이름인데요, 1937년에 이 베체트라고 하는 사람이 처음으로 이 질환을 체계적으로 기술하였기 때문에 이 의사의 이름을 따서 병명을 짓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 질환은 유럽이나 미국 등에서는 드물게 발생하고, 주로 한국, 일본, 중국, 중동지역 및 터어키, 그리스, 이탈리아, 레바논 등 지중해 연안 국가들에서 잘 발생합니다. 그래서 그 발생지역을 지도로 그려보면 마치 과거 마르코 폴로의 실크로드에 인접한 나라들에서 호발한다고 하여, '실크로드 질환'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와 인접한 일본의 경우 1970년대에 가장 높은 발생빈도를 보여 1972년의 1년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베체트 병 환자가 약 8,000명에 이르렀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1년에 처음으로 본 질환의 발생이 보고된 이후 흔하지 않게 보고되어 왔지만, 1980년대 이후 현재까지는 환자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TV 드라마에서도 중종 임금님이 입안과 외음부가 헐고, 안구 질환이 있는 병을 가진 것으로 설정되어, 아마도 베체트병을 앓으시는 것으로 생각된 예가 있었습니다. 사실 현재는 우리 주변에서도 베체트병을 가지신 분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베체트병은 혈관의 만성 염증성 질환입니다. 그러니까 혈관이 분포되는 신체 내의 여러 장기의 증상을 나타낼 수가 있습니다.그러나 불행하게도 아직까지 그 정확한 발생원인이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환경오염 및 중금속 중독설, 바이러스 감염설, 박테리아 감염설, 음식, 기후, 인종, 지역적 특성 등이 가능한 원인들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또 자가면역 기전이나 다른 면역학적 이상, 혹은 유전적 측면 등도 관련된 병인으로 생각되어지고 있고, 여기에 관한 다양한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베체트병의 임상증상은 다른 류마티스 질환들에서처럼, 매우 다양한 증상들이 서로 동시에 혹은 연속적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하고 특징적인 증상은 구강궤양, 성기 궤양, 피부병변 및 안구 증상 등입니다. 간단하게 이 것들을 나누어서 설명드리면, 첫번째로 구강궤양은 반복적으로 입안이 잘 허는 증상을 말합니다.
보통 1년에 3번 이상 구강 궤양이 있으면 이상이 있는 것으로 판단합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성기 궤양은 입안이 허는 것과 비슷하게 특별한 이유가 없이 외음부가 허는 증상을 말합니다. 세번째로 피부 증상은 몇가지 형태로 다르게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즉, 피부가 잘 곪고 상처가 잘 아물지 않는 경향이 있을 수도 있고, 결절성 홍반이라고 하여, 하지에 붉은 반점 같은 것이 생기면서 누르면 아픈 증상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네번째로 안구 증상은 눈 안의 특정 부위에 염증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것을 말하는데, 포도막염, 홍채염 및 망막혈관 침범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가 반복 발생되면 때로 실명을 초래할 수도 있으므로 가장 주의를 필요로 하는 증상이 되겠습니다. 이상의 증상들이 10년사이에 단계적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동시에 모든 증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또한 위의 증상들처럼 흔하지는 않지만, 관절 염증, 위장관 침범 증상, 부고환염, 혈관 병변, 중추신경계 증상 등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베체트병은 주로 20-30대에 발생하지만 소아 혹은 40-50대 이후에서도 발생할 수가 있습니다. 성별로 볼 때는 세계적으로는 남녀가 1:1 정도로 비슷하게 생긴다고 되어 있지만,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여성에서 발생빈도가 더 높은 경향이 있습니다.
베체트 병을 한번에 확진할 수 있는 한가지 검사법은 아직까지 없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베체트병의 진단은 국제적으로 그 정확도가 인정된 진단 기준이 있어서, 이에 따라 전문의가 판단하는 임상증상에 의해서만 결정될 수가 있습니다.
그 내용은 앞서 말씀드린 증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즉, 재발성 구강궤양은 진단을 위해서는 꼭 있어야 하는 증상이고, 그외 4가지 다른 증상들, 즉 외음부 궤양, 피부증상, 안구 증상, 그리고 피부의 이상 과민 반응의 4가지 중에서 2가지가 있으면 베체트병으로 진단할 수가 있습니다. 4가지 중의 '피부 과민반응 검사'는 앞서 증상들을 소개드릴 때 말씀드리지 않았던 내용인데요, 가시에 찔린 부위, 침이나 주사를 맞거나 채혈한 부위 등이 바로 아물지 않고 곪는 현상을 보이는 경우와 같은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보기 위하여 따로 Pathergy test라고 하는 것을 하게 됩니다. 베체트 병이라고 하여 Pathergy test가 항상 양성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않지만, 이것이 양성으로 나오면 현재 베체트병이 심하구나 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가늠자가 되기도 합니다.
베체트병은 여러가지 종류의 약물들을 적절히 잘 조합하여 사용함으로써 증상의 발생을 막게 됩니다. 약제의 선택은 현재의 환자 증상, 유발 요인, 면역 상태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안구 증상 혹은 중추신경계나 심혈관계 침범 등의 전신 장기 침범의 증상이 있는 경우는 약물 부작용의 발생 빈도가 조금 높다고 하더라도 강력한 면역 억제제를 반드시 사용하여야 합니다.
그리고병의 진행상태, 치료반응 및 약에 대한 부작용 유무 등을 확인하기 위해 최소한 3-4개월 간격으로 정기적인 혈액검사와 소변 검사 등이 필요합니다. 일시적인 치료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치료하여야 하는데요,적절히 처방된 약물을 꾸준히만 복용해 주신다면 일상 생활의 불편이 없이 잘 지내실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때로 치료 과정 중에 증상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정도로 크게 호전될 경우는 환자의 상태에 따라 약물 투여 없이 정기적인 경과 관찰만을 하시게 되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베체트 병의 경과는 환자분에 따라서 매우 다양하지만 대체로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면서 만성적인 경과를 취합니다.
본 질환이 계속 진행되면 관절통, 근육통의 증상이 심해지기도 하고, 위장관을 침범할 경우는 오심, 구토, 복통 등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빈도가 흔하지는 않지만, 중추신경계가 침범되면 심한 두통이 지속되기도 하고, 다른 신경과적인 이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안구증상도 꼭 주의를 하여야 하는 것이지만, 중추신경계 침범이나 심혈관계 침범시에는 예후가 매우 나쁜 경우가 있으므로 대단히 신경을 써야 합니다.
베체트 병의 악화요인 중 긴장과 과로가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베체트병 환자분 중에 피곤만 하면 입이 자주 허는 분들이 흔히 있으십니다. 이런 경우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긴장을 줄이며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셔야 합니다. 베체트병의 경우 조기진단 및 치료가 실명이나 전신장기 침범이라는 심각한 후유증 발생을 예방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됩니다. 따라서 단순히 구강 궤양만 반복하는 경우라도 베체트 병의 다른 증상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여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베체트 병은 현재로서는 한두가지 약물로서 완치시킬 수 있는 질병이 아닙니다. 따라서 환자분께서는 장기적인 약물 복용에 따르는 심리적인 부담감이 있으실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만, 희망을 가지고 적극적이고도 꾸준히 치료하시기를 권유드립니다. 현재 류마티스 관련 연구와 치료 약물들의 개발은 하루가 다르게 눈부시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마도 10년 내로는 완치할 수 있는 약제도 개발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